나드 한 옥합을 부은 여인(막14:3-9)

나드 한 옥합을 부은 여인(막14:3-9)
2026-09-06 07:17:1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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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드 한 옥합을 부은 여인(14:3-9)

 

 

하나님 백성으로 잘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는 사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실함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다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드린 여인은 세상적인 평가는 불성실한 잘못된 재산관리인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장 잘 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성도들도 본문의 제자들처럼 삶의 평가를 인간의 기준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시간과 재물의 관리를 성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깨뜨릴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허비와 아름다운 일의 충돌

허비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은 충돌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여인의 행동이 허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름다운 일로 평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나갈 때 고라는 시간의 허비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라의 행위를 악하다 하셨고 모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성에 붙잡힐 때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 중심입니까? 이성 중심입니까?

 

2. 하나님의 때와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때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한 때에 하나님께 나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때에 예물도 드려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람도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바울도 즉시 순종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길을 떠났습니다. 본문의 향유를 드린 여인은 자신의 향유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절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3. 옥합을 깨뜨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자아를 깨뜨리는 성령의 역사).

영적인 시각에서 향유 옥합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는 제한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옥합 안의 순전한 나드는 우리 내면에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옥합을 깨뜨려야 예수님께 향유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자아를 깨뜨려야 성령께서 주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성과 자아를 깨뜨리는 신앙만이 성령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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